골프의 기원은 로마? 네델란드? 스코틀랜드? 중국?
1000년전 한국에서도 골프가?
로마시대 때 탄생한 파가니카
로마 시저(BC100~44)때 로마인이 ‘파가니카’라는 게임을 했다는 기원이 있다.
스코틀랜드 성을 정복한 시저 병사들이 야영지에서 쉬던 중 한쪽 끝이 구부러진
막대기로 새털로 만든 볼을 치며 즐겼던 놀이가 오늘날 스코틀랜드에 남아서 골프가 됐다는 설이다.
로마인은 기원전 1세기 무렵부터 전유럽을 왕복하고 영국해협을 건너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를 점령,
4세기까지 머물렀고 이때 원주민에게 전래했다는 것.
파가니카는 굽은 막대기와 깃털을 가득 채운 가죽 볼을 사용하는 놀이 였다고 전한다.
초기에 골프볼도 가죽 커버 속에 깃털을 넣어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파가니카 볼은 직경이 4~7인치(10~18센티미터)정도로 컸으므로 크기 면에서 골프볼과 차이가 있다.
네덜란드 아이들이 즐긴 코르프
13세기 무렵, 네덜란드에서 즐기고 있던 ‘코르프’라는 빙상경기가 당시양모를 중심으로 교역이 활발했던
스코틀랜드에 건너가서 그것이 골프로 발전됐다는 설이다. 네덜란드에서는 15세기에 모습이 사라져 버린 골프가
스코틀랜드에서는 크게 발전했다. 당시 네덜란드에서 행해지던코르프는 롱노이즈라는 나무로 만든 스틱으로
코르크 모양의 볼을 치며 승부를 겨루던 경기이다. 경기방식은 빙상에서 할 경우 얼음구멍에 볼을
넣거나 볼을 말뚝에 맞든가 해서 승부를 겨루던 것이다. 그러나빙상이 아닌 육지에서 겨룰 때는
구멍을 파고 거기에 볼을 쳐넣는 비교적으로 단순한 게임이었다. 이는 당시의 교회 그림에도 남아있다.
가장 유력한 스코틀랜드 기원설
골프 기원 중 골프와 유사한 놀이가 스코틀랜드에서 독자적으로 육성되었다는 견해가 가장 유력하다.
골프의 기원국이 어느 나라인지 모르지만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골프가 스코틀랜드 지방에서 꾸준히 발전돼 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스코틀랜드 골프 융성설을 뒷받침할 만한근거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골프(Golf)'란 스코틀랜드의 오래된 언어로 '치다'인 '고프(Gouft)'가 그 어원이다.
그리고 스코틀랜드 지방의 지형이 골프장으로는 적격이었다. 스코틀랜드 북방쪽 해안에는 링크스(Links)라고 불리는
기복이 많은 초원이 있었다. 멋진 잔디와 잡목이 우거진 작은 언덕으로 이어진 지형은 골프코스로 하기에 적합했다.
더우기 이곳은 공유지여서 서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다.
중국 원나라때 행해진‘ 추이환’ 특이하게도 골프기원에 중국설도 있다.
본래 중국에서는 ‘추이환’이라 부르는 골프와 유사한 게임이 있었다. 이미 943년에 간행된 남당의 사서에 이 사실이 쓰여 있다.
그중의 하나인 환경에 기록된 것에 따르면 경기자들은 서로 예의를 존중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플레이를 생각 할 정도로 신사적인 경기였다.
지난 1991년 중국 감숙성의 한 사범 대학 체육학부 교수인 링홍링은 호주의 한 학회지에
‘골프의 원조는 중국’이라는 글을 발표해 관심을 끌기도 했다.
지금까지 밝혀진 골프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1457년에 스코틀랜드이 제임스 2세가 내린 금지령이다.
이보다 500여년 전 중국 원 나라 때 그려진 ‘추환도벽’에는 오늘날 골프 형태와 비슷한 경기를 하는 모습이 나타나 있다.
12세기부터 15세기 사이에 중국에서 성행하던 추이환을 위해‘ 환경’이라는 규정집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골프와 비슷한 고려시대의 장구
우리나라에도 골프와 유사한 게임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격구, 장구’가 있었다.
격구는 말을 타고 나무 막대기로 볼을 치는 것이고 장구는 도보로 나무 막대기를 이용해 볼을 치는 것이다.
격구가 우리나라에 언제 들어왔는지는 확실한 기록은 없지만 최초의 격구에 대한 기록은 ‘고려사’권 1의 대조세기,
원년 9월 조항에 나온다. ‘상주의 적장 아자개(견훤의 아버지)가 사람을 보내 귀순하려 함에 왕이 명령하여
그를 맞이할 의식의 연습을 격구장에서 했다는’ 기록이 그것이다. 고려 태조 왕건이 즉위(서기 918년 6월 13일)해
얼마 되지 않은 그해 이미 격구장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 이전 후삼국 시대부터 널리 격구가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 와서 부녀자들도 즐길 정도로 성행했다가 조선시대 태종 때부터는 도보로 하는 볼놀이 기록이 있다.
세종 실록과 세조실록에도 장구를 즐긴 기록이 곳곳에서 나온다. 세종은 큰 아버지인 태상왕(정종)을 모시고 궁전에서
양편으로 나눠 장구를 즐겼고, 세조도 사정전에서 왕자와 종친들을 모아 장구를 즐겼다는 것이다.
세종(1413때 장구경기 규칙이 만들어졌으나 세조(1421)때 더 세분화됐고 확실해졌다.
그러나 ‘왕이 그런 천한 놀이를 직접해서야 되겠느냐’는 식의 당시 유교이념이 지배하던 때라
이 경기는 급격히 사라지고 말았다. 그 당시 격구는 왕족이나 귀족들의 무관시험 과목이나 무술연마용으로 활용했고
장구는 규칙도 간단해 일반 서민들도 놀이로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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