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골프 기네스 기록
● 한국 최초의 골프장
1900년, 함경남도 원산에 한국 최초의 골프코스가 생겨났다는 기록이 있다. 영국인에 의해 건설된 이 골프장은 일본 최초의 골프장보다 1년 앞서 건설되었다. 당시 영국인들이 어떤 플레이를 했고 또 코스사정은 어떠했는지 알 수 없으나 단지 세관 구내에 6홀 코스가 있다는 기록만 남아있다.
● 최초의 남자 아마추어 골퍼
일반적으로 구한말 시대 골프를 접한 영친왕을 한국 최초의 골퍼로 기억하고 있지만 진정한 아마추어 골퍼로는 1920년대 세브란스병원 의약품부 책임자로 일하던 박용균씨로 전해지고 있다. 박씨에 대한 기록은 제대로 남아있지 않으나 서양의사들과 빈번한 접촉이 계기가 되어 골프를 치게 되었고 경성구락부를 즐겨 찾았다고 한다.
● 최초의 여자 아마추어 골퍼
여자들의 바깥출입이 규제 당하던 1930년대 당시 여자로서는 선구자격인 배귀자씨가 최초로 골프를 치기 시작했다. 당대의 여걸이자 멋쟁이었던 그녀는 골프말고도 우니나라 악극계의 창시자였으며 훌륭한 경영자였다. 당시 동양극장과 배귀자는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였는데 그만큼 그녀의 영향력이 컸기 때문이다.
● 최초의 민간 스폰서오픈경기
내셔널 경기인 한국오픈과 한국아마추어대회만이 치루어지던 70년대 중반 최초의 민간 스폰서경기인 오란씨 오픈이 창설되었다. 그때가 1976년. 동아제약 강신호 회장의 용단으로 창설된 이 경기는 또 다른 민간스폰서경기 창설을 유도했다는 의미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는데 1987년 경기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이 대회를 통해 최상호 등이 스타플레이어로써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 시즌 최다승 아마추어골퍼
1988년 아마추어 상비군 한영근은 4월 매경오픈 아마부 우승을 필두로 그해 열린 공식경기 아마부를 모두 휩쓰는 경이적인 기록을 수립했다. 이 같은 기록은 한국골프사 100년사에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 한국 최초의 프로골퍼
1916년생인 연덕춘이 골프를 시작한 것은 그가 17세 되던 해이다. 집근처의 군자리코스를 자주 놀러간 것이 인연이 되어 골프를 치게 된 그는 1937년 일본오픈 선수권대회에 출전하여 8위를 기록한다. 국내에 프로골퍼가 제도화 되지 않았던 시기였으나 일본 오픈선수권에 프로의 자격으로 출전, 비공식이긴 하나 최초의 프로골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 한국 최초의 여자프로골퍼
남자에 비해 여자프로의 탄생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뒤따랐다. 70년 후반까지도 이 땅엔 공식 여성프로가 존재하지 못하고 있었다. 프로골프협회내에 여자프로부가 설치되면서 실기전형을 거친 4명의 여성골퍼를 프로골퍼로 등록 시켰다. 강춘자, 한명현, 구옥희가 프로입문 동기생이나 강춘자가 등록번호 1번을 기록하여 최초의 공식 여자프로골퍼가 되었다.
● 한국인 최초의 골프장
미국인 코스 설계가 댄트에 의해 1921년 6월, 경성에 최초의 골프장이 탄생되었다. 우선 6홀이 만들어지고 그후 9홀로 확장 되었으나 코스손질이 힘들어 결국 7홀만 플레이가 가능했다고 기록은 전하고 있다. 1900년, 원산 세관구역 내에 세워진 6홀 코스가 있었으나 세관내 거주하는 외국인 전용코스인 탓에 한국인을 상대로 한 최초의 골프장은 경성골프구락부라 할 수 있다.
● 최초의 간이 퍼블릭 코스
1968년 6월, 뚝섬 경마장내에 골프장 형식을 갖춘 6홀 규모의 간이 골프장이 개장 되었다.골프연습자를 위해 280야드까지 볼을 날릴 수 있는 드라이빙레인지도 갖춘 마사골프클럽은 나이트 시설까지 설치, 밤 10시30분까지 개장했으며 겨울에는 4백미터 국제규격에 맞는 스케이트링크까지 개방하기도 했다. 인도어에서 레슨이 끝나면 이곳을 거쳐 필드로 나가는 것이 상례처럼 되어 늘 많은 골퍼들로 붐비는 명소가 되었다.
● 최초의 드라이빙 레인지
1965년 5월, 장충동 자유센타의 1만7천평 대지위에 40타석의 한국 최초 드라이빙레인지가 개장했다. 당시 흥화공업사 이석기 사장의 착안에 의해 탄생된 드라이빙 레인지는 처음 우려와는 달리 붐비는 인파로 타석이 늘 혼잡을 이루었다. 연습비용은 24개 1박스당 80원씩 했고 여성골퍼들에게는 반액으로 우대해주는 특혜를 베풀기도 했다.
● 최악 스코어 남자 우승기록
1958년부터 실시된 한국프로골프선수권대회의 원년 경기에서 연덕춘 프로는 306타로 우승을 차지하여 이부문의 새로운 기록을 남겼다. 1965년 제8회 경기에선 홍덕산이 302타로 우승했는데 전년도 경기의 우승자 한 장상의 282타 우승기록과는 20타 차이가 나는 황당한 스코어였다.
● 최악스코어 여자 우승기록
1978년 제21회 PGA 선수권 대회부터 여자부가 창설되었다. 남자프로와 같이 나흘경기로 치러진 경기에서 한명현은 83,77,79,78의 스코어를 보여 결국 29오버파 317타 우승이라는 어이없는 기록을 남겼다. 여자프로 탄생 원년경기에서 보여준 이 같은 기록에 관계자들은 실소를 참아야 했다.
● 한국 최초의 골프잡지
정확한 연도는 확인할 수 없으나 1930년대 한국 최초의 골프잡지 <클럽 라이프>가 발간되었다. 시사문제를 비롯해서 골프기술의 해설, 각계 명사들이 기고한 글 등 당시로서는 상당히 충실한 내용이 수록되었다고 한다. 단돈 30전이라는 싼값에 팔리던 이 잡지는 시즌때 만 나와야 하는 사정으로 인하여 몇 회를 넘기지 못하고 폐간 되었다.
● 한국 최초의 해외원정경기
1956년 영국 월드컵경기(당시 캐나다컵)출전이 한국프로골퍼 해외원정 첫 경기로 기록되어 있다. 당시 프로골프협회가 결성되기 이전인 까닭으로 공식프로골퍼가 전무했으나 일찍부터 프로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연덕춘과 박명출이 이 대회에 참가했다. 이것이 조국광복 후 그리고 정부수립 후 국제경기에 출전한 첫 경기였다.
● 최초의 여성골프모임
1957년 8월, 최초의 여성골프모임인 서울컨트리클럽부인회가 발족되었다. 남편을 따라 골프장을 찾던 부인들끼리 조직한 이 모임은 사업부, 교양강좌부, 프로그램부로 편성하여 골프이외에 사회봉사활동에도 적극적인 면을 보여 주었다. 이들은 1년에 한번씩 골프대회를 마련하기도 했고 주 1회 정기모임을 가지며 회원 간의 친선을 도모하기도 하였다.
● 최초의 36홀 골프장
밀려드는 골퍼를 수용하기 위해 한양컨트리클럽은 18홀 증설을 서두르게 되었다. 기존 코스 옆에 18홀을 증설, 우리나라 최대의 54만평으로 늘어난 한양의 36홀은 1970년 9월 완공되었다. 신코스의 설계는 일본최고의 대성건설과 연덕춘의 공동설계로 이루어 졌는데 두 개 코스의 이름을 ‘한코스’ ‘양코스’로 명명하기도 했다.
● 최초의 외국경기 우승
경성골프구락부 유일의 프로로 활약하던 연덕춘이 1937년 일본무대 진출이후 4년 만에 전일본오픈 첫 우승의 기록을 세웠다. 그의 우승은 손기정 선수의 마라톤 제패에 비유될 만큼 값진 기록으로 평가되었는데 일제하에 시달리던 한민족의 가슴에 긍지를 심어준 한국골프사에 길이 빛날 쾌거로 받아들여졌다.
● 최초의 한국골프협회 회장
1959년 발족된 한국골프협회(현 대한골프협회)는 7년 후인 1965년 9월 창립총회를 갖고 초대회장직에 박두병씨를 선출하였다. 그는 초대회장직에 오르면서 각 골프장의 연합과 한국아마추어골프계의 발전을 위해 아낌없는 정책을 펼쳐 나갔다. 아울러 한국골프계의 행정을 도맡는 연합체로 부상시켜 나갔는데 심혈을 기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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